
2023.04.13/ #도시 기록 #박달교 #박달건 용지 #곤두레미 고개 #만문누리/ 경기도의 전쟁과 분단사적을 조사하는 경기문화재연구소 연구원과 안양시 역사편찬 연구원, 경기도 안양시 현장소장 박달교 문화해설위원(박달구룡지 일제강점기 다리), 병목 현상에 철로의 흔적(100여성중 나머지 섹션)그리고 채석장, 문둥암으로 이어지다.
박달군용지 군부대 앞에 위치한 박달교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다리입니다. 1930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다리는 일제강점기 이전 안양에서 안산으로 가는 옛길의 모퉁이입니다. 다리를 건너 곤두레미고개를 건너면 안산에 도착한다..
박달교는 지금도 군부대 진입로로 사용되고 있다.. 1968~69연도 석수동 미군 83병기대대 전령을 역임한 닐 미샬포프 병장이 찍은 사진을 보면 닐름이 탄약고로 쓰였을 때 박달군을 위해 미군이 사용했던 박달교를 건너면 박달교, 헬기장과 막사촌이 있는 드넓은 공터가 있었다..
일제는 박달군 터에 평양군 안양군 병창을 건설하기 위해 이곳에 있던 마을 사람들을 박달로 보냈다.2일행은 동호현마을 부근으로 이전했다.. 기록에 따르면 박달군지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동수암이 있었다고 한다., 막 뼈, 해초, 선녀골, 좋은 다리, 부종, 웃다, 잘못 놓아, 토치 라이트 8-123개의 마을이 있었고 일본인들은 1930년1990년대 평양군 안양군 병창 건설 당시 폐쇄됐다.. 여기도 있던 후령군, 엄정구, 당혹스러운, 엄성 등의 묘와 구만.(충신)조상의 묘와 정문 등 문화재가 유실됐다고 한다..
다시 군대(병기고)공사중 안양~안산간 곤드레미 고개가 폐쇄됐다.. 이후 안산지방을 오가는 길은 박달삼거리에서 호현까지였다.(범고개)-시흥시 목암동 연결 우회도로(박달로)설립되어 현재.
현재의 박달교에는 다리 끝 난간 콘크리트 기둥에 새겨진 박달의 글자가 아직도 선명하다.. 반대편 극의 소화 5년도 5월 00쓰여져 있지만 몇 년이 지나면 읽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참고 소화 5연도는 서기 1930년1년이다.
진안, 박달교가 처음 발견된 시기 2020년년도 8월 16우리는 함께 탐험을 떠났습니다. KBS 이완희 피디보낸 자료(아시아역사자료센터를 검색해보니 박달교 관련 문서가 있었다.)보고 1941년년도 5월 조선군경부 안양–안산 도로개량공사의 청사진이 있습니다., 도로의 길이 12M 너비 1,190M, 7M 너비 5,238M그 결과 박달교는 공사의 일환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박달교는 길이 1500만, 너비 4M처음에는 목교로 만들었다가 나중에는 콘크리트로 만들었다가 해방 후 미군이 관련 문서를 보내 보강 공사를 한 것 같다고 했다..
다리 상부와 한쪽 손난간이 없는 현재 폭입니다., 하단의 교각을 보면 처음에 건설된 다리는 좁았지만 나중에 다리의 폭이 넓어진 것 같습니다..
군두레미 고개
(정당성) 경기도 시흥시 목암동과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에 걸쳐 있는 언덕..
(열다) 곤두레미고개는 안양시와 안산시를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두 지방을 잇는 유일한 교통로였다..
(이름 유래) 예전에 고개가 있는 곳은 숲이 울창하고 울퉁불퉁하고 산간지라 산적과 강도가 많아 이 곳을 지날 때 곤두박질쳐서 지나가야 했다. ‘강모 머리‘나는 말했다, 현대에 이르러 곤두레미고개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겨울에 술에 취해 이 고개에 와서 잠을 자다가 얼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이로부터 술에 취해 몸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곤드레‘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곤드라미 고개라고도 한다..
(자연 환 경)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수리산의 산맥은 북쪽으로 뻗어 박달로가 지나는 지점까지 낮아진다.. 곤두레미 고개는 조남동 장군곡마을 수리산에서 내려오는 고개이다. 150m 안팎의 언덕 사이를 지나는 고개로 높이는 약 100m 정도이다. 80m금액. 구릉지형은 완만한 경사로 구성되어 차량이나 사람의 통행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고개 양쪽에는 일찍부터 농경지가 발달하여 벼농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행정구역상 안양시에 속한 언덕의 동동면은 군사훈련장으로 바뀌었다., 시흥시에 속한 서사면은 지금도 농경지가 있다..
(현재 상황) 곤두레미고개로 가던 길은 일제강점기에도 폐쇄됐다.. 당시 안양시에 평양군 병기고 안양분원 건설에 따른 조치였다.. 이후 곤두레미고개를 지나던 길이 다시 열렸지만, 지금은 다시 닫혀있다. 고개 동쪽 안양시 박달동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고개를 통과하는 도로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시흥시 목암동과 안양시 박달동은 일반도로로 연결된다.. 도로명이 박달로인 도로는 안양시와 광명시를 잇는 지방도로다.397줄이 열렸지만1996년지방도로는 폐지되고 일반도로로 전환. (원천) 한국학중앙연구원 – 지역문화 및 전자전시회
